실존주의란?
실존주의 (Existentialism)는 인간 개인의 자유, 책임, 그리고 주관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학적 사상입니다. 실존주의에 따르면 인간이란 단순히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행동하고 느끼며 살아가는 주체자라는 주장입니다. 19세기에 덴마크 출신의 철학자 소렌 오뷔에 키르케고르와 독일 프로이센 출신의 철학자 니체에 의하여 만들어진 이 사상은 후에는 유신론적 실존주의와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두 가지 형태로 갈라지게 됩니다. ‘실존’이란 말에 있어 여러 학자들의 공통된 사상은 '인간에 있어서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라는 점입니다. 그 뜻은 인간은 주체성으로부터 출발된다는 것이며 실존은 ‘인간’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정의되기도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실존주의 철학은 이름을 알린 많은 신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실존주의의 배경
실존주의는 근대 사회가 모순적인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하는 19세기 무렵 두 학자, 덴마크의 키르케고르와 독일의 니체의 사상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20세기 초에는 러시아의 사상가 레프 이사코비치 셰스토프, 에스파냐의 철학가 미구엘 우나무노, 오스트리아의 유태계 작가 프란츠 카프카 등이 일상적인 삶 속에 숨겨져 있는 허무하고 음울한 심연을 바라보며 본래적 개인의 주체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하는 그러한 사상을 전개시켰습니다.
실존철학이 하나의 독자적인 '철학'으로 변한 것은 제1차세계대전의 패전국 독일에서 심각한 사회적 위기감이 생긴 시기였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의 '세계관의 심리학'이나 독일의 실존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공식적인 실존철학의 탄생을 돕는 저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패전국 독일뿐만 아니라 각국에 사회적 불안이 엄습하고 사람들이 심각한 소외감을 느끼게 됨에 따라, 인간의 주체성 회복을 목표로 하는 실존철학은 유럽국가 프랑스, 이탈리아를 거쳐 세계 각국에 등장하게 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실존주의 철학의 대표자 하이데거 (그 또한 키르케고르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의 영향을 받아 1930년대 인간 주체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철학을 발표하고 '실존주의'라는 이름을 붙인 최초의 인물입니다. 실존철학이 탄생한 이유로써는 1차 대전 후의 소외적인 사회 상황보다도 2차 대전 후 상황이 더욱 심각했고, 세계 각국 사람들이 불안과 절망에 떨었기 때문입니다. 전쟁 때문에 일어났던 잔혹하고 비참하고 황폐한 생활에 더해 전염병의 출현으로 인한 공포 등이 더해져 실존주의는 더욱 널리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고 점차 대중의 기분을 사로잡는 트렌드처럼 무드화되어간 것입니다.
실존주의의 내용
'실존(existence)'은 본질(Essence)과 대비하여 쓰이는 철학용어이며 현실적인 존재를 의미합니다. 실존은 말그대로 이념적 본질에서 빠져나와서 밖에 빠져나온 현실적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죠. 현실적 존재도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지금, 여기에, 이렇게 있다는 '현실 존재'는 다른 것에 의해 대체 불가능한 독자적인 현실의 '자기 자신'이라고 합니다. 또한 인간으로서의 진실한 존재방식을 현실에서 실현해 나가는 자각적 존재인 자기 자신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무자각적 존재는 이미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지정되어 있는 본질을 따라 그 현실의 존재방식이 저절로 결정되지만, 자각적 존재인 인간은 '실존이 본질에 선행'하기 때문에 이 현실에서 적용시킬 자신의 생존 방식에 의해서 그 인간을 그 인간답게 하는 개성이 각자에게 새겨져 가는 것입니다. 실존이 그의 본질을 결정하고, 실존하는 것을 그의 본질로 인식하는 것이 진실한 '실존'이라는 이름에 맞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실존에 의해 그 본질을 결정해 가는 존재는 자유로운 존재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실존의 본질은 결국 자유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자유란 '관념적' 가능성인 자유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선택의 필연성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실존적' 자유입니다.
키르케고르의 삶
키르케고르에게는 그저 이론으로 남는 것이 아닌 삶 자체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개개인이 스스로 결단을 내리는 주관이 중요하다는 것이었죠. “내가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철학을 주장하여도 본인이 그 속에 살고 있지 않다면 나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읽은 책이 산더미로 쌓여 있다고 해도 그것들을 삶에 적용하지 않으면 나의 실존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키르케고르는 헤겔이 주장한 '진리의 보편성'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진리란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일회적이고 내면적이어야 한다는 의견을 가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해당하는 진리는 중요하지 않고 바로 자신에게 해당하는 진리가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모든 빛이 모여들고 모든 빛이 퍼져 나가는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키르케고르에게 있어 ‘나’라는 존재가 모든 것이었습니다. 모두 아는 진리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어떻게 실천해 나가는지는 개인의 고유한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역사의 과정까지도 논리적으로 결정되었다고 할 수 없고, 나라는 사람의 확고한 결단에 따라서 다르게 움직여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단은 불안과 결합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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