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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언니 공부방

심리학의 역사, 프래그머티즘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by 파주언니 2024. 1. 9.

심리학의 역사는 심리학이 어떻게 탄생하였고 어떻게 이어져왔는지를 보여줍니다. 심리학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심리학적 사색의 증거는 고대 이집트에도 남아 있습니다. 현대 심리학 같은 경우, 독일 심리학자 빌헬름 번트가 1879년 독일에 위치한 라이프치히 대학에 심리학 실험실을 열고, 한편 1870년대에 미국에서도 심리학 연구가 시작되면서 철학이라는 학문에서 독립하여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심리학의 다양한 영역에는 생리학, 신경과학, 인공지능, 사회학, 인류학과 철학 및 기타 인간 활동이 모두 포함됩니다.

 

 

19세기 심리학의 역사

 

오늘날 심리학은 '행동과 심리작용의 연구'로 정의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신과 행동에 대한 철학적 관심은 이집트, 그리스, 중국, 인도에서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79년 빌헬름 분트가 첫 심리학적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연구실을 라이프치히에 창립하면서 시험연구영역의 심리학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분트는 자신을 심리학자라고 부르고 심리학 교과서를 출간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 밖에 초기 심리학에 공헌한 인물로는 헤르만 에빙하우스 (기억과 망각에 대한 실험 연구분야를 개척한 독일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 (실용주의 철학의 확립자로 알려진 미국의 심리학자), 이반 파블로프 (파블로프의 개 연구로 유명한 러시아의 생리학자) 등이 있습니다.

실험심리학이 발전한 후 다양한 종류의 응용심리학이 나타났습니다. 그랜빌 스탠리 홀은 1880년대 전반에 독일에서 미국으로 교육학을 도입한 학자입니다. 그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실험소를 열어 실험 심리학자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었죠. 다른 예로는 1890년대 존 듀이의 교육이론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1890년대에 휴고 뮌스터버그가 산업 및 기타 영역에서 심리학을 응용하고 그에 관한 저작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라이트너 위트머는 1896년 펜실베니아 대학교에 첫 심리학 클리닉을 설립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제임스 맥킨 카텔은 프랜시스 골튼의 인체측정학적 기법을 도입하여 1890년대에 첫 심리검사법을 만들어 냈고 심리학 분야에서 '정신검사'라는 용어를 처음 제안하였죠. 그 무렵 오스트리아 비엔에서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서 마음에 대한 독립적인 연구법을 발달시켰고, 이것이 추후에도 매우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20세기 심리학의 역사

20세기에는 분트의 경험주의에 대한 영국 학자 에드워드 티치너의 비판에 대한 반동이 일어났습니다.이 반동의 영향으로 형성된 미국 심리학자  존 브로더스 왓슨은 행동주의 심리학을 창시하였는데, 이는 심리학의 연구 대상을 쉽게 측정이 가능한 분명한 행동으로만 한정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행동주의자들은 '마음' 속 지식은 과학적으로 얻기에는 너무 형이상학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20세기 마지막 10년 동안은 행동주의가 쇠퇴되고 인지과학 (인간의 마음에 대한 연구)이 적극적으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인지과학은 '마음'을 다시 연구의 주제로 삼고 진화심리학, 언어학, 철학, 행동주의, 신경생물학과 같은 부분에서 응용합니다. 이러한 유형의 연구를 통해서 근래에는 인간 정신에 대한 광범위한 이해가 가능하다고 여기고 결국 인공지능과 같은 다른 연구 영역에 응용될 수 있다고 제의된 것입니다.


프래그머티즘 (실용주의)

실용주의 또는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은 1870년쯤 미국에서 시작된 철학적 전통입니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철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의 '실용적 극대' 발표를 실용주의의 출발로 본다고 합니다. 각 학자들의 주장에는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공통점은 '진리를 실천상의 유용성을 기준으로 결정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실천적 결과와 비교하여 이론의 참 거짓을 판정하는 철학적 논의의 방법인 진리라는 것은 우리를 인도하는 방식이자 가장 좋은 작용을 하는 것이고 생활의 어떤 부분에도 가장 잘 적응하는 것이라는 것이죠. 또 관념을 행위의 도구로 간주하고 인식은 주관적 진리의 총화라고 믿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주관적 관념론은 실용주의자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데요. 이 입장에서는 참 실재라는 것은 '경험'으로 이해될 수 있고 '순수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설명됩니다. 인식에 있어서 주관과 객관이란 이 경험의 내부에서의 대립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1886년 프로이트는 비엔나로 돌아가 프랑스인 학자 장 마르탱 샤르코에게 배운 히스테리 치료법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치료 경험을 거듭하면서 치료 기법에 적용 가능한 다양한 개량을 더해 최종적으로 도달한 것이 바로 자유연상법이었다. 당시에는 최면 상태일 때 환자가 의식하지 못한 어린 시절의 일 등을 이야기하면 자연스레 히스테리의 병세가 개선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자유연상법을 시행함으로써 환자는 증상을 치료할 수 있다 생각했고, 이 치료법을 프로이트는 점차 정신분석이라고 이름 붙여 알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자연과학자였기 때문에 '과학'으로 증명 가능한 정신요법을 목표로 했습니다. 프로이트 이론의 배경에는 헤르만 폰 헬름홀츠의 기계론적 생리학, 유물론적 과학관이 존재했는데요. 그는 뇌신경이나 정신(마음)의 움직임이 모두 설명된다면, 인간의 무의식의 존재 및 그 작용에 대해서도 모두 실증적인 설명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종교나 종교적인 것에 대한 준엄한 거부를 평생 보여왔으며 그 결과 융을 비롯한 많은 제자들과 사이가 틀어지기도 합니다.